SYNOPSIS
문을 열고
Scene

BGM : https://www.youtube.com/watch?v=WQFc_iWLozo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중요해요? 형은 그때도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잖아요.”



  문 너머로 태준의 울음소리가 흘러들어왔다. 태준의 말이 맞았다. 선우는 이미 태준의 의견을 무시한 전적이 있었다. 태준은 항상 제가 원하는 바를 솔직히 말하였고 간절히 청하였지만 그 모든 애원을 거부한건 선우 자신이었다. 스스로가 한 모든 말과 선택이 독이 되어 돌아와 가슴을 도려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우는 태준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하선우는 남태준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비겁한 사람이었기에 태준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 중요해. 그때 그렇게 보내서 지금 더 중요해졌어.”




*




  “나 안 보고 싶었어요?”



  선우는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게 온통 새하얀 병실 한 가운데 꿈에서만 그리던 얼굴이 떡하니 서서 저를 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태준과 헤어진 지 이미 수개월이 지나있었다. 그런데도 선우는 아직도 꿈에서 태준을 만났다.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은 가벼운 연애였다는 스스로의 생각과는 다르게 날이 지날수록 태준과의 기억은 선우의 목을 죄어왔다. 이별 후 더 힘든 사람은 덜 사랑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선우는 연애 중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감정들을 뒤늦게 하나씩 깨달아갔다. 2년의 만남은 생각보다 깊은 감정의 후유증을 남겼다. 집안 곳곳에 회사 곳곳에 선우의 모든 삶 곳곳에 태준의 향이 남아있었다. 제가 버린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버려진 것 같은 그리움이 쏟아져 내렸다. 끊었던 담배에 손을 대고 좋지 않은 컨디션에 술을 들이켰다. 자신의 기준을 무너트리고 들어오는 모든 일을 소화해내기 위해 무리했다. 시간에 공백을 어떻게든 없애기 위해 발버둥 쳤다. 시간의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태준의 향을 맡으면 선우는 참을 수 없이 비참해졌기 때문에. 결국 선우는 없는 시간을 내서 열린 짧은 팬미팅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 코끝엔 병원 특유의 소독약냄새가 감돌았고 팔엔 링거바늘이 꽂혀있었다. 그리고 태준이 선우의 앞에 앉아있었다.

  이제 선우는 눈앞에 있는 태준이 꿈속의 인물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기에 아무렇게나 대답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 TV에선 네 광고가 나오고 신문에선 네 영화를 선전해. 잡지엔 네 화보가 실리고 라디오에선 우리가 찍은 영화 OST가 흘러나왔어. 그렇게 많은 곳에서 널 만났는데 그래도 네가 보고 싶더라. 그래서 더 보고 싶더라. 그리고 지금도 보고 싶어.


“…피곤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해야 할 이야기는 없었다. 선우는 단 한 마디로 대화를 종료시키며 태준에게 등을 돌려 누웠다.


  “…들키면 안 되니까 이만 갈게요.”


  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지만 문을 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선우는 등에 꽂히는 시선을 알아챘다. 피곤하단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여태껏 무리했던 일정이 모두 한 번에 몰아치는 기분이었다. 몸은 무겁고 정신은 멍했다. 그래서인지 애써 붙잡던 마음까지 약해졌다. 다시 입을 연 건 그래서였다. 그래서.


  “미안했다. …지금도 미안하고.”


  때늦은 사과였다. 이제와 사죄를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건 누구보다 선우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우는 미안하단 말을 입에 담았다. 어쩌면 이제는 그만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싶다는 말일지도 몰랐다.


  “…미안하면 얼굴 보고 이야기해야하는 거 아니에요? 뭐가 미안한대요?”


  태준의 발걸음이 돌아섰다. 선우가 고개를 들자 태준의 원망어린 시선이 얼굴에 닿았다. 저를 보며 웃는 얼굴을 언제 봤는지 이젠 기억조차 흐릿했다. 선우는 힘없이 웃었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그냥 다... 못된 짓 많이 했잖아. 내가, 너한테.”
  “미안한 줄 아는데 왜 그랬어요?”

  “…….”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 미안해하질 말았어야지.”

  “…….”

  “왜 미안해해요?”


  태준은 또다시 눈물을 터트렸다. 당황한 선우는 손을 뻗었다가 이내 거두었다. 헤어진 그날밤처럼. 선우에겐 태준을 달래줄 자격이 없었다. 울린 건 선우였지만,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선우가 아니었다.


  “…간다는 사람 너무 오래 붙잡았네. 조심히 들어가.”


  몇 마디 말을 더 주고받았지만 끝내 선우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말이 전부였다. 태준은 언젠가의 밤처럼 미련 한 치 없다는 투로 몸을 돌려 병실 밖을 빠져나갔다. 또다시 문이 닫혔다. 또다시 태준이 보이지 않았다. 선우는 고개를 숙여 제 손등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물방울이 손등을 적셔나갔다. 저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사실 하선우는 이 모든 상황이 매우 힘들었다.

  그걸 깨닫자 참아왔던 설움이 터져 나왔다. 선우는 제 얼굴을 감싸고 결국 무너져 내렸다. 닫힌 문이 다시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아, 그 문을 닫은 이유가 결국은 저때문인지라, 그 사실에 화가 나고 답답해져 한참동안 선우는 소리 내어 울었다. 그저 문뿐인데 그게 그리도 서러울 수 없었다.



*


  그리고 다시, 선우는 닫힌 문 앞에 서있었다. 문밖에선 여전히 태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은 그때와는 달랐다. 여긴 더 이상 한 겨울의 분위기 있는 식당 앞도 아니었고 소독약 냄새 가득한 병실 안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선우와 태준의 사이에 문 하나의 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괜찮아졌다 싶으면 자꾸 형이 날 휘두르니까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은 건지 모르겠어요.’

  그 말에 쉬이 답할 수 없었던 건 선우조차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도 지금에도 태준과의 관계를 깔끔히 정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걸 태준도 선우도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건 그 방법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였다. 선우와 태준에겐 해당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선우는 태준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과거보다 더욱.


“남태준.”


  태준의 흐느낌을 비집고 선우의 목소리가 들어섰다. 태준은 그제야 울음을 서서히 그쳤다. 선우의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앞으로의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생각해도 난 겁쟁이가 맞거든. 비겁한 것도 맞아.”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기로 하였다.


  “솔직히 지금 상황도 불편하고 무서워. 겁난다고.”


  숨겼던 이야기를,


  “근데 지금 이 관계도 정리한다고 생각하면… 그게 더 무섭네. ”


  전해야만 하는 사람에게.

  모순적이지? 선우의 마지막 문장이 끝날 때쯤엔 태준의 울음소리가 완전히 그쳐있었다. 선우는 첫 영화제에서 첫 상을 받았을 때만큼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지만 마음 속 한켠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졌다. 오랜 연예계 생활로 두꺼워졌던 제 가면이 눈앞에서 깨어졌다. 그건 선우가 아닌 태준이 해낸 일이었다.


  “솔직히 정리할 수 있을 거 같다가도 형 다시 보면 그게 허무하게 무너져요.”


  욕하고 때리고 뒤돌아서도 받아들여야지. 네게 준 상처들과 비교했을 때 더한 처사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 어떤 반응도 달게 받아야지.


  “나도, 무섭다고….”

  다시 네가 울면 그때는 달래줘야지.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두드려주고 웃어줘야지.


  “나가서 이야기해.”

  할 수 있다면 사랑한다고, 다시 이야기해야지.


  그러기 위해 선우는 닫힌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제가 닫히게 만든 문을 이제는 열어야할 때가 왔다. 서진욱이란 이름을 빌려서가 아닌 하선우의 이름으로 남태준에게 다시금 다가가 보자 그리 마음먹었다.





문이 열린 곳엔 여전히 빛나는 그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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