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어느 늦은 밤의 데이트
Scene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계절은 봄이라지만 아직은 날이 추웠다. 그래서였을까, 거리엔 인적이 꽤 드물었다. 태준은 트레이닝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저 멀리서 보이는 반가운 인영에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매일을 봐도 질리지 않을, 제 연인. 연인이라. 그 간지러운 호칭을, 선우에게 붙이게 된 지 벌써 석달이 넘어갔다. 얼결에 한 제 찡얼거림에 가까운 발언을 듣고 선우가 연애하자며 받아준 게 벌써 그렇게 지나 있었다. 태준은 “많이 기다렸어?” 하며 제 앞에 와서 선 선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무 좋았다. 왜? 하며 의문을 담은 표정으로 바뀌는 얼굴도, 비록 마스크로 반이나 가려진 얼굴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지금 당장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드물긴 해도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 그러면 안 됐다. 지금은 ‘선후배’를 연기해야 했다. 태준은 선우에게 내밀지 못 하는 손을 여전히 주머니에서 빼지 못 한 채, 선우가 전화로 가고 싶다던 방탈출 카페 쪽으로 먼저 발길을 돌렸다. 태준은 아직 크게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해도, 선우는 선우였다. 가게로 들어서서 선우가 마스크를 벗자 마자 어머어머, 하는 놀란 감탄사들이 들려왔다. 선우는 처음 온 방탈출 카페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곧 카운터 앞에 가서 섰다. 유명인을 상대하는 게 떨렸던지 더듬더듬 안내하는 직원에게 슬쩍 웃어보이기까지 하는 선우와 달리, 똑같이 처음인 태준은 살짝 긴장한 채 마냥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남태준, 가자.”

“아. 네.”


두 사람은 안대를 사이좋게 하고 앞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아리송한 어딘가로 이동했다. 테마가 뭐였는지도 제대로 확인 못 했는데, 시간에 맞는 걸 예약해둔터라 안대를 벗어 방을 확인한 두 사람은 동시에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방탈출이 공포 테마도 많고 무섭단 얘길 들어서 꽤나 비장하게 입장했건만, 낮은 연령대의 고객을 위한 마법사의 방 테마였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귀엽고 발랄함이 느껴지는 배경음악이 어우러져 긴장했던 어깨가 잔뜩 풀어졌다. 태준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며 와 이거 귀엽다 하면서 이것 저것을 만져보기 바빴다. 형, 이건 뭘까요? 하면서 역시 처음 온 선우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그런데 선우는 제법 취향에 맞았던 모양이다. 몇 가지 단서를 찾아내며 집중해서 문제를 풀어갔다. 초반에 난이도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다 단순하게 풀리는 걸 알고 허탈했던 점을 빼면 막힘 없이 술술 풀어서 주어졌던 시간이 종료 전에 탈출할 수 있었다.


“재미있네, 방탈출.”


선우는 꽤나 뿌듯한 얼굴이었다. 옆에서 그닥 추리에 도움은 하나도 안 되었던 태준은 그래도 선우가 좋아하는 모습이 좋아서 웃어버렸다. 

다음 코스는 방탈출 카페를 나오자 눈 앞에 보인 오락실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사실 아역배우를 하느라 청소년기를 대게 촬영장에서 보내며 훌쩍 넘겨버렸던 선우도 그랬겠지만, 일찌감치 모델계에 뛰어드느라 학교를 잘 다니지도 못 하고 친구도 사귀지 못 한 태준도 이런데에는 딱히 추억이 없었다. 이 나이쯤 되면 살짝 유치한 감도 있겠지만, 궁금증 또한 앞서서 두 사람은 충동적으로 갑자기 오락실에 입성하게 되었다.

레이싱 게임도 해보고, 총 게임도 콤비 플레이로 해보고, 농구공도 던져보았다. 선우는 방탈출 하던 때에 머리 쓰는 건 꽤 잘했지만 다른 게임은 영 젬병이었다. 특히 북을 치는 리듬게임은 못 해도 너무 못 하는 것이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박자가 하나도 맞지 않자 어리둥절해하는 선우의 리듬감에 태준은 귀여워서 혼났다. 같은 맥락으로 펌프도 정말 못 했다. 바닥에 불이 들어와서 꺼질 때까지의 그 찰나 동안 선우는 바닥을 보고 있다가 뒤늦게 발을 움직여 바닥을 밟았다. 


“뭐야. 나 밟았는데.”


멋쩍은 듯 웃어보이는 선우의 얼굴을 보며 태준도 마주 웃었다. 즐거웠다. 오락실이란 게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었다. 마지막으로는 몇 개의 머신이 줄줄이 놓여져 있는 인형뽑기였다. 


“남태준. 오백원 더 없어?”

“어? 네?”


선우가 눈여겨둔 문어 인형에서 눈을 떼지 않고 옆에 있던 태준을 불렀는데, 태준의 목소리가 저 뒤에서 들려왔다. 돌아보니 태준은 이미 잔돈을 잔뜩 바꾸고 있었다. 픽 웃어버린 선우가 태준에게서 동전을 받아다 열심히 문어 인형을 노렸다. 동전은 줄어가는데 인형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도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저거 꼭 뽑을 거야 한 번 더!를 외치다 어느새 가져왔던 현금도 모두 탕진해버리고 말았다. 그쯤하고 있었더니 주위에 슬금슬금 ‘저기 하선우 아냐?’ ‘하선우 맞는 거 같은데?’ ‘헐 하선우?’ 하면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데이트를 끝내야 할 타임이었다. 선우가 어차피 돈도 다 썼으니 가자며 오락실의 출입구 쪽으로 먼저 발걸음을 돌렸다. 그걸, 눈에 띄게 침울해져서 축 처진 어깨를 하고 태준이 쫓았다. 비록 목표했던 인형을 뽑진 못 했지만 경험해보지 못 했던 많은 것들을 해 본 게 만족스러워 기분이 좋았던 선우는, 어딘가 시무룩해보이는 태준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남태준. 인형 하나 사줘?”

“그게 아니에,”


태준이 아쉬워한 점은 이 야밤의 깜짝 데이트가 끝난다는 게 아쉬운 것이었지만 선우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하나 사준다고 하니 또 그걸 거절할 수 있나. 그래서 말을 내뱉다 중간에 삼켜냈다. 우물쭈물하고 있었더니 선우가 역시 인형을 원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래, 인형은 나중에 사줄게.”


하고 말했다. 그렇지만 태준은 인형보다도, 선우가 갖고 싶었다. 지금, 너무나. 아까 통화하면서 방탈출 카페를 한 번도 가본적 없다던 선우에게 그럼 지금 가보지 않겠냐며 냈던 용기만큼, 태준은 좀 더 용기를 내본다.


“그게 아니라, 이렇게 헤어지기 좀 아쉬워서요…” 

“..우리집 갈래?”

“네! 갈래요!”

“그럼 그러던가.”


선우는 생각보다 선뜻 태준을 초대했다. 이 늦은 야밤에. 태준은 곧장 대답해놓고 선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잘 알 수 없었지만, 이건 태준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얼굴은 아닌 게 확실했다. 태준이 빙그레 웃었다.


“형 집에 가서도 우리 재미있게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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